by Eugene on Wednesday, December 14, 2011 at 3:25am



초딩 5학년 때 우리교회에 ‘사랑의 노래 선교단’ 이 왔다. 남성 4인조 보컬 밴드였다. 기타치고 드럼치고 빽코러스도 있고….좋았다. 근데 신기하게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랑의 노래 1집만 수천번 들었을 것이다. 테이프 늘어나서 더 이상 못들었다.

 

초딩 6학년 때 주찬양1집을 들었다. 우리교회 음악과는 참으로 달랐다. 역시 수천번은 들은거 같다. 수학 여행때 논 기억보다는 주찬양1집 듣고 다닌 기억 밖에 없다.

 

내가 중딩1학년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 한국 경배와 찬양과 한국CCM 이 시작되고 발전되는 시기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나는 참 운이 좋았던거 같다.

 

중딩 2학년 때 부터 대학생 형아 누나들 따라 다니면서 찬양팀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늘 새로운 찬양을 빨리 배울 수 있었고 새로운 음반도 빨리 접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참으로 많은 팀과 가수들이 있었다. 주찬양, 찬양하는 사람들, 옹기장이, 최인혁, 송정미, 박종호, 예수 전도단, 두란노 경배와 찬양, …..

 

그 당시에는 음반과 함께 악보도 같이 제작되었었다. 그런 악보들이 나의 선생님들이었다. 미국오기 얼마전 최덕신 님과 함께 찬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감개가 무량했다. 그리고 음악인으로서 대화가 통했고 서로의 생각이 많은 부분 일치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악보제작을 통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말에 동감이 되었고 나 또한 도움 받은 일인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예수 전도단 5집을 통해서 나는 베이스 연주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박종호를 통해서 피아노를 어떻게 리듬적으로 칠 수 있는지 배웠고 오른손과 왼손의 컴비네이션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진짜 좋은 뿅가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근데 박종호의 음반들은 미쿡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미쿡…

나는 그 때 미쿡 사람들이 얼마나 음악을 잘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미쿡꺼만 듣기 시작했다.

 

고딩 1학년 때 박종호가 부산에서 콘서트를 하게 되었다. 그 때 내가 베이스를 연주했었다. 다른 형아들과 누나들이 밤새워 연습하고 죽어라 연습했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나는 연습도 별로 안했다. 아니 연습을 안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연습해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맨 날 박종호 악보 섭렵에 여념이 없을 시기였다. 정말로 박종호와 함께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정말 영광이었다.

 

내가 형아들과 함께 하던 찬양팀 활동은 계속 되었다. 경배와 찬양팀이었기 때문에 고딩때 부터는 호산나 인테그리티 씨리즈를 들으면서 우리찬양팀과 비교하게 되었다. 너무 달랐다. 너무 세련된 찬양들이었다. 같은 찬양을 하는데도 너무 달랐다. 탐 브룩스 처럼 편곡하고 아브라함처럼 베이스를 치는게 나의 20대 때의 목표였다.

 

힐송이 뜨기 시작했다. 좀 당황스러웠다. 음악적으로는 정말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호산나는 회사인데 반해 힐송은 교회이라는 점이 정말 대단하긴 했다. 새로운 사역의 지평을 여는거 같았다. 하지만 힐송 이후에 내 욕구를 채워줄 (교회)음악은 없었다. 호산나도 쇠퇴기를 맞이했고… 사실 모던 워십 이후에 나는 더이상 새로운 찬양에 관심이 없었다. 이 때부터 나의 위기는 시작되었다. 나의 눈은 90년대 중후반에서 멈춰버렸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찬양은 더 이상 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징징거리는 기타 중심의 싸늘한 백인느낌의 찬양은 정말 하기 싫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바보스러운 소리인데 사람들은 열광했다. 교회에서 하니깐 그냥 했다. 애착도 관심도 없었다. 물론 찬양은 은혜스러웠다. 단지 음악적인 면에서만 그렇다는 뜻이다. 늘 앞서가던 나는 이제 질질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도태되어 가는 구나 싶었다.

 

2007년 미쿡에 왔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미쿡뮤지션들과 연주해 보기 위해 왔다. -_- 꿈을 갖고 날아왔다.  2년 반 정도는 한인교회를 섬겼다. 이민 사회의 많은 아픔과 슬픔을 보았다. 하지만 이 2년 반 동안은 거의 음악을 포기했던 시기였다. 빽 투 80s 였다. 한국 교회에 있을 때는 하지도 않던 옛날 찬양들도 많이 했다. ^^

꿈은 고사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혹독한 미쿡 생활을 해야 했다.

 

2010년 달라스에 오게 되면서 흑인교회에서 사역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즐거운 한 때였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긴 하다. 계속 사역하고 있으니…) 블랙가스펠… 정말 내가 추구하던 음악이란걸 확실히 느꼈다. 한국에 있었으면 꿈도 못 꿀 곡들을 매 주 했었다. 엄청나게 어려운 곡들도 제법 많았다. 정말 교회에서 연주하는 거 자체가 나의 음악적 욕구를 다 채워 줄 정도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런 곳을 예비하심에 감사드린다.

 

2011년 CFNI에 들어오게 되었다. 찬양으로 유명한 학교다. 근데 문제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완전 싸늘한  하얀느낌의 찬양만 한다는게 문제이다. 2000년대 초반에 내가 두려워했던 일이 가시화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이러다 내가 도태되는거 아닌가.. 했던 생각들… 이 곳에서 체험하고 있다. 적응이 잘 안된다. 이런식의 찬양이라면 나는 더 이상 교회에서 음악을 못하겠다는 생각도 여러번 아내한테 말한적 있다.

 

요즈음 하얀노래(사실은 이 하얀노래들이 주류찬양이다. 가스펠 같은거는 사실 주류에 끼지도 못한다.) 들을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싫어도 억지로 듣는다. 시간이 아까울 때가 많다. 그래도 듣는다. 살기 위한 몸부림? 주류에 끼고 싶은 아쉬운 마음?

 

프레이어 룸(아이합)에 와이프와 함께 오디션에 통과하여 매 주 월 토 알링턴에 있는 프레이어 룸에서 찬양한다. 정말 하얗다. 처음에는 연주중에 몇 번 졸았던 적도 있다. 이렇게 음악이 단조로울 수 있나… 그래도 가사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썼다. 정말 영감 넘치고 훌륭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문제는 음악이다.

 

프레이어 룸에서는 중보기도 시간중에 Rapid Fire라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 여러명이 나와서 짧게 중보기도를 한다. 몇 명이 기도한 다음에 싱어들이 그 기도들에 맞는 예언적 찬양을 한다. 물론 그 순간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하는 것인데 예술이다. 이 때 연주자들은 코드 하나 아니면 두개로 리프를 계속 연주 하는데 처음에는 너무 밋밋해서 좀 그랬다. 내가 아내한테 제안했다. 우리 방식으로 연주하자…

와이프가 피아노 치고 내가 베이스 치는데, 억지로 록방식으로 연주하지 않고 우리 방식으로 소울풀하게, 리드믹하게 그리고 펑키하게 연주했다. 그 날 워십리더 Aaron이 깜짝 놀랐고 너무 좋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우리 연주에 대해 칭찬했었다. 그리고 애런이 한 마디 하는데 깜딱 놀랐다. “Jazz it up tonight!” 하는게 아닌가? 나는 그 말이 만화제목인 줄만 알았다.^^

 

백인 스타일과 흑인 스타일의 짬뽕이 가능하단 걸 알았고, 그 날 이후로 우리의 연주는 나날이 발전되어 지난 주에 나는 급기야 즉흥 연주에서 인터플레이의 진수를 맛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카타르시스였다. 나는 항상 음악을 미리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다. 보통 잼 연주하면 썩 좋은 플레이가 나오지 않는데 프레이어 룸에서의 애론(리더&어쿠스틱)과 자이라(드럼) 임지영(건반) 과의 연주에서 어떻게 이런 좋은 사운드가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감탄해했다.ㅋㅋ

 

나는 요즘에 백인찬양 흑인찬양 두 영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체험하고 있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흑인찬양 그리고 아이합에서 백인찬양.

 

 찬양에 그런게 어딨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미쿡은 정말로 확 나뉘어 있다.

다는 아니지만 흑인들은 흑인찬양을 좋아한다. 백인찬양 하면 짜증내는 교우들도 계신다. 백인? 그들은 아예 흑인찬양은 그들 안중에도 없다. 물론 소수는 둘 다 좋아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두 영역에서 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지 궁금하다.

흑인찬양, 백인찬양 했으니….

앞으로는…..

황인찬양을 해야할지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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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ugene & Ju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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