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ugene on Wednesday, February 15, 2012 at 4:14pm
기타를 연습하기 위해 처음 샀던 교본이 세광 출판사에서 나온
“통기타 첫걸음” 이었는데 (제목이 확실치 않다.)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던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마르고 닳도록 보았다.
통기타의 모든 주법이 총망라 되어 있었으니 정말 그 책 하나면 끝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기타 치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최신 히트 팝송’ 이었다.
이 책 역시 사, 오백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책이었다.
그런 좋은 자료들이 시중에 널려 있었다는 것을
그 때는 미처 놀랍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서점의 음악코너에는 해외 락그룹 악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종류가 수 백가지는 되었던거 같다.
딥퍼플, 반 헤일런, 건즈 앤 로지즈, 잉위 맘스틴,
본 조비, 반 헤일런, 메탈리카…
밴드들의 상세한 설명과 각 곡들의 해설,
그리고 친절한 주법 설명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어떻게 그런 악보들을 다 채보 했을까 싶었다.
한국에는 정말 음악 괴물들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삼호 출판사에서 나온 ‘락 베이스’ 라는 베이스 기타 교본이 있는데
기초부터 각종 다양한 주법들이 총망라 되어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레슨용으로 이 책 보다 좋은 베이스 교본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나는 아직도 이 교본으로 학생들 레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들에는 다들 이상한 공통점 하나가 있었는데
저자가 참 이상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책들 저자 이름이 “편집부 편” 이라는
이해가 안되는 이상한 표현으로 되어 있었다.
도대체 뭐를 편집했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밴드 악보는 아예 저자 표시가 없었다.)
그런데 대딩 시절 어느날,
내가 가지고 있던 삼호 출판사의 락 베이스 교본이
좀 다르게 출판된 것을 보았다.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지고 책은 사분의 일 분량으로 축소 되었다.
어…뭐지?... 하는 사이에
저자가 편집부편이 아니라 일본사람 이름이었고
리또뮤직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뭐야 이거?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때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 내가 보았던 좋은 책들이 다 짝퉁이고,
또한 그것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란걸 …
편집부편의 정체를 그 때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은하철도 999와 마징가 Z가 일본거란걸 알았을 때의 충격과 비슷한 것이었다.
삼호 출판사의 편집부 편 락베이스 교본은 더 이상 출판 되지 않고
정식 라이센스 버젼으로 출판된다.
그러나 정식 라이센스 버젼은 별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아니다.
좋은 부분은 뒤에 다 있는데 앞부분만 조금 나오다가 썰렁하게 책이 끝나 버린다.
아마 이전의 편집부편 교재는 이 책 저 책 섞어서 출판한 책이었던 거 같다.
아니면 이 책의 시리즈가 있어서 전 시리즈를 한 권에 다 묶었든지 말이다.
과연 편집부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ㅋㅋ
나는 다행스럽게 아직도 편집부편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와서는 그런 불법 책들은 다 사라지고
정식 라이센스판으로 책들이 들어왔다.
물론 아름 출판사에서는 나중에 일본 도레미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해서
밴드 스코어 악보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계약기간이 만료되어서
역시 지금은 구하기 힘든 자료들이 되어 버렸다.
요즘은 옛날처럼 좋은 자료들을 찾기가 힘들다.
(2007년도 이후에는 미국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2007년 이후 한국 사정은 나도 잘 모른다.)
참고로 미국에서 출판된 악보들은 일본 악보들에 비해 별로 볼 만 하지 않다.
미국에서 출판한 ‘옐로우 자킷’ 밴드 스코어를 보았는데 악기 솔로 연주 부분에
악보가 없고 대신 간단하게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솔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참 썰렁했다.
그에 반해 일본에서 출판된 악보들은 음반과 거의 똑같이 채보되어 있다.
그들의 오타쿠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일본 사람이 채보한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의 악보를 보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떻게 그걸 다 채보할 생각을 했을까.
키스 자렛도 그 악보 보고는 연주 못할 것이다. ㅋㅋ
옛날에는 아주 착한 가격으로 얼마든지 좋은 자료들을 구입할 수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시중에 나돌던 좋은 자료들 다 사모아 둘 걸 하는 뒤늦은 후회도 있다.
나의 성장기 때 우리나라 출판사들은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좀 없었던 듯하다.
감사하게도 나같은 가난한 딴따라들은 이런 책들 덕분에 공부 참 잘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흔히 있었던 삼천원 짜리 포켓 사이즈 오케스트라 악보도
이제는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자료가 되어 버렸다.
나는 불법으로 추정되는 “편집부 편” 들의 책과
그 밖의 합당치 않은 경로로 나온 책들을 가지고 공부한 한 사람이다.
물론 그 때는 그런 내막을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출판사들의 그간의 행태에 비판할 가할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 시대적 상황에서 허용될 수 있었던 일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가난한 나라들도 옛날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출판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 여겨진다.
이 지면을 빌어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세광, 삼호, 아름 출판사 편집부, 그동안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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